비가 오는 날이었다. 2월의 자욱한 안개를 뚫고 굵은 비가 쏟아졌다. 나는 공방에서 테디 배어에 색칠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난 열두 살이었고, 학교생활에 막 적응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행복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이 곧 절벽 아래로 추락할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동생은 비디오 게임에 열중해 있었다. 텔레비전 옆에는 안뜰로 이어지는 미닫이 문이 있었다. 아빠가 안뜰에서 우리를 등지고 선 채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빠 화났어"
동생이 게임보이에서 눈을 떼지 않을지 말했다. 나는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온 터라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를 힐끗 쳐다본 후 내 방으로 직행했다. 컴퓨터를 막 켜려는 순간, 아빠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니콜, 잠깐 나와보거라."
심장이 빨리 뛰었다. 내가 말썽 부린 게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아빠가 나를 니콜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동생이 불만에 찬 얼굴로 느릿느릿 방으로 들어와 아버지 옆에 앉았다.
아빠는 아무런 예고나 경고도 없이 천장을 바라보며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죽었어."
아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방에는 침묵만 흘렀다. 어쭙잖은 공포영화에서처럼 귓가에 내 숨소리만 커다랗게 울렸고 아빠 동생이 서로를 붙들고 우는 모습만 보였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왜 웃었을까? 물론 아빠의 말이 거짓이 아니면 알고 있었다. 아빠는 내 앞에서 눈이 퉁퉁 부도록 울었다. 다 큰 남자가 아기처럼 울었다. 하지만 아빠를 믿을 수 없었다. 엄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아빠는 휴대전화를 내게 건네주며 할머니에게 전화해 보라고 했다. 할머니가 알고 싶은 사실을 모두 알려줄 거라고.
나는 밖으로 뛰어나가 할머니가 울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빗속에서 듣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내 우상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자살을 했단다. 내가 받은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생은 다시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었고 아버지는 어디론가 다시 전화를 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모든 게 정상으로 보였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간 나는 열두 살 여자아이가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인터넷 메신저의 내 상태를 수정했다.
"엄마 편히 잠드세요".
어김없이 새 날이 밝았고 나는 울면서 잠이 깨어났다. 그 뒤로 2주 내내 울었다. 먹지도 학교에 가지도 않았다. 딱 한 번 장례식 때만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더 착한 딸이 되고, 엄마에게 더 좋은 생일 선물을 주고, 집안일을 더 많이 도왔어야 했다. 내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내가 평소에 하는 사서 행동들 때문에 어머니가 자상한 것만 같았다. 내가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 엄마가 자살했다. 엄마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서 엄마가 자살했다.
난 더 이상 괴롭힐 수 없을 때까지 나 자신의 괴롭혔다. 나 자신을 싫어하는 것 외에는 생각나는 방법이 없어서 함부로 나를 망가뜨렸다. 그러자 엄마까지 미워하기에 이르렀다. 나를 떠난 엄마가 죽도록 미웠다. 나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니까. 내 가이 집에서 여자와 엄마 역할을 하도록 남겨두고 떠났으니까. 나는 고작 열두 살이었다. 여전히 엄마가 필요했다.
어떻게 아빠가 나를 키우기를 바랐을까? 특히 여자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렇게 떠나선 안 됐다!
새끼를 키우는 어미라면 정녕 상상도 못 할 일이 아닌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질문했다.
2주 후, 아버지는 나를 다시 학교에 보내며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은 틀렸다. 학교 사람들 모두가 니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도 내가 복도를 걸어가면 수군거렸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떠다니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왕따가 되었다. 혼자 지냈다. 너무 비참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나는 왁자지껄한 운동장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조용한 도서관으로 갔다. 나는 아무 책이나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 들었다. 어차피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간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 책에서 그 페이지에서 나는 내 인생을 바꾼 한 문장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건 바로 네덜란드 식물학자 폴 보에즈의 말이었다.
"용서는 과거를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용서. 나는 그 두 글자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불꽃같은 증오에 삶이 온통 잠식당한 터라 나능이 두 글자를 너무 오랫동안 읽고 있었다. 나는 왜 엄마를 그토록 미워하면서, 그토록 용서하려고는 하지 않았을까? 용서는 용서를 받는 사람보다 용서하는 사람에게 훨씬 이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어린 마음에도 나는 분명히 깨달았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증오하며 사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용서라는 두 글자는 나를 지배하고 있는 내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기에 내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할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용서받지 못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결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나는 내가 껴안은 분노를 모두 용서하고 이해하는 데 썼다. 아무리 남에게 심한 상처를 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생에서 한 번 더 기회를 얻을 자격은 있다. 나는 엄마가 왜 그런 방식으로 내게 깊은 상처를 안겨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유를 알 필요도 없다. 나는 엄마를 용서함으로써 나 자신에게서 용서받았다.
《죽기 전에 답해야 할 101가지 질문》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지음/ 류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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