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알이 부리부리한 푸른 용 한 마리가 말했다.
"나는 이제까지 바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래서 바위가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단단한지 알지 못한단 말이야."
"참으로 한 심한 녀석!
바위에 머리를 부딪히면 금방 피투성이가 되어 나자빠지는데 그걸 모르다니, 쯧쯧."
옆에 있던 호랑이가 혀를 찼다.
푸른 용은 기다란 몸을 뒤틀더니 강 건너 앞산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용이 지나간 자기에 용의 몸통만큼 커다란 동굴이 뻥 뚫렸다.
호랑이는 강가에 앉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바위를 볼 수는 있지만 도대체 창호지를 볼 수가 없단 말이야.
듣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얇디얇은 게 창호지라는데...... ",
호랑이의 말을 듣고 있던 강물 속에 황금잉어가 말했다.
"그래서 너는 옛날부터 방 안에서 잠자는 어린아이를 스스럼없이 물어갔구나."
호랑이는 부끄러워 온몸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후로 호랑이는 절대로 마을 가까이 내려오지 않았다.
황금잉어가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눈을 크게 떴다.
"나도 고민은 있어.
나는 물을 볼 수 없거든.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
그때 강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인간이 나섰다.
"쳇,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야.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집채만 한 바위, 백설 같은 창호지, 시원한 물,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거든.
게다가 나는 돈을 보는데 얼마나 눈이 밝다고!
그건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것이잖아?"
관계/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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